[잡생각] 영웅의 역설 (*의식의 흐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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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술 영화의 미학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액션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 『영웅』은 액션 예술 영화라고 해야할지, 예술 액션 영화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고 상징적인 색채감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단지 저는 배우의 몸짓에 더 관심을 두는 입장에서 예술 액션 영화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같은 관점에서 저는 이연걸과 견자단의 합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를 명작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영웅』에서 표현된 그들의 무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는 할리우드가 그들을 데려다 가위질하고 땜질하는 꼴을 보고나면, 꼭 이 영화로 다시 안구를 정화시키곤 합니다.

다음은 이에 대하여 지난 글에서 제가 적은 평론의 일부입니다.

제가 보기에,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오로지 중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예술 액션 영화입니다. 특히 영상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중국의 액션 영화는 배우들의 동작을 자잘하게 편집하지 않으며, 동작 구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러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면, 대표적으로 미국의 할리우드 액션은 배우의 동작을 어지럽게 편집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속도감만을 얻어갑니다. 때렸다는 사실은 전해주지만, 어떻게 때렸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저만의 공허한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음은 Jackie Chan - How to Do Action Comedy에서 인용된 성룡의 인터뷰입니다.

Like American movies, you can see there are a lot of movements. Big one the camera angle movement that means the actors they don't know how to fight. I never move my camera. Always steady, wide-angle. Let him see I jumping down, I do the flip, I do the fall.

미국 영화를 보면 화면이 수없이 움직입니다. 카메라 앵글이 크게 바뀐다는 것은 배우들이 싸울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저는 절대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항상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와이드 앵글로 촬영합니다. 관객들이 제가 뛰어내리고, 공중에서 돌고, 낙법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성룡은 딱 제 취향대로 온전히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노력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룡의 작법은, 중국 영화의 편집 방식을 보았을 때, 중국 영화계 전반에 퍼져있는 사고방식으로 보입니다. 물론 미국라는 문화 강국이 배우의 온전한 동작을 담기 위한 편집법을 모르지 않을 것이나, 무술을 하나의 예술적 요소로 다루어 왔던 중국 영화계와 미국 영화계 사이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글에서 아래와 같이 적고, @kyslmate님과 대화를 나눈 바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중국의 무술영화가 현실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실제 싸움은 저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은 오로지 현실의 재현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페라나 뮤지컬에서 노래를 부르며 대화한다고해서 현실감이 없다고 따지지 않듯이, 중국의 무술 영화에서 무술은 예술성을 가진 하나의 요소입니다.


모든 음악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획일적인 감성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듯, 액션 연기 역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성룡의 경쾌한 액션을 예로 들었습니다. 성룡은 주변 사물을 이용하여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며, 타격의 흐름에 리듬감을 주어 상황을 더욱 유쾌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Jackie Chan - How to Do Action Comedy은 다시 한 번 저의 이러한 감상이 의도된 연출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His American work is missing something else: “There's a rhythm also into the way that shots are performed and the way they're edited. And Jackie said something very interesting that the audience don't know the rhythm is there until it's not there” Jackie's fight scenes have a distinct musical rhythm, a timing he works out on set with the performers.

그의 미국 작품에는 무언가 빠져 있습니다: “촬영을 하는 방식과 편집을 하는 방식에서 리듬이 고려됩니다. 성룡은 흥미롭게도 ‘관객은 리듬이 없어져서야 비로소 리듬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룡의 격투 장면에는 그가 다른 배우들과 짜놓은 뚜렷한 음악적 리듬이 있습니다.

이쯤하면 저도 서당개 삼십 년에 풍월을 읊고 있는 듯합니다.

역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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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의 미학은 역설입니다. 보통의 할리우드식 액션이 파괴와 잔혹에서 오는 쾌감만을 강조한다면, 『영웅』은 액션에 파괴의 쾌감 뿐 아니라 찬연한 아름다움을 함께 묶어 냅니다. 이연걸과 양조위가 대결하는 위의 장면은 이 같은 『영웅』의 미학을 한 눈에 보여줍니다. 장예모 감독은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폭력적인 몸동작을 마치 우아한 무용처럼 표현합니다.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폭력은 하나의 점과 선이 되어 시각적 미감의 구성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이 겉보기의 아름다움은 다시, 인물들이 느끼는 슬픔과 결의의 감정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역설과 역설이 뒤섞여진 폭력의 묘사는 복잡미묘한 감정과 함께 새로운 종류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중국 무술이 보여주는 미학은, '폭력'이라는 가장 끔찍한 행위에서 동작과 선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아이러니입니다. 폭력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미적 감각을 느낀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냅니다. 저는 이 역설이 주는 쾌감을, 긍정과 부정, 긴장과 완화가 겹쳐서 나타나는 정중동의 미학과 같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동중정 정중동 같은 역설의 표현은 말 그대로 모순적 서술이며, 일관되지 않은 묘사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색해 할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리처드 니스벳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 따르면, 이같은 모순의 병용은 무척 동양적인 정서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동양에는 '새옹지마'의 고사처럼 길은 흉이되기도 하고 다시 흉은 길이 되기도 하는 모순된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니스벳은, 서양인들이 모순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 것과 다르게, 동양인은 두 개의 모순된 주장을 자연스럽게 모두 수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서로 모순되는 두 정서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라고 말했던 공자의 가르침이 여전히 그의 철학적 후손인 동양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이 역설의 묘미를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가츠와 그리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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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또 다른 방식으로 역설의 미학을 또렷히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입니다. 이 점에서 『베르세르크』 역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작을 꼽을 때마다 절대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작중, 일종의 역설로서 주인공 가츠와 그리피스의 애증 관계도 무척 좋아하지만,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세르크』의 역설은 흑(黑)백(白)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도 볼 수 있듯, 가츠와 그리피스는 각각 흑과 백의 색깔로서 묘사가 됩니다. 그들은 인물의 외모에서부터 검정과 하양으로 대비될 뿐 아니라, 작중 별칭으로도 가츠는 검은 검사로, 그리피스는 하얀 매로 불리웁니다. 게다가 색깔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성격 또한 정말 흑과 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은 검사 가츠는 괴팍하고 무례하며 공포의 대상인데 반해, 하얀 매 그리피스는 온화하고 사교적이면서 선망의 대상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만화의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가츠는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이단으로 몰리지만, 그리피스는 구국의 영웅으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작품을 보며 이내 가츠에게서 하양을 느끼고, 그리피스에게서 검정을 느끼게 됩니다. 냉혈한의 겉모습을 가진 가츠이지만 사실 그의 서툰 표현 속에는 따뜻한 동료애와 의리가 있음을 알게 되고, 반대로 따뜻한 미소로 치장한 그리피스의 가슴 속에는 타인을 도구로 보는 차가운 인간관과 시커먼 야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는 가츠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자신을 가장 믿고 따랐던 동료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은 그리피스에게서 우리는 흑과 백이 반전되는 역설을 경험합니다. 악을 상징하는 과 선을 상징하는 이, 겉으로는 명백히 가츠를 악으로, 그리피스를 선으로 그리고 있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를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누군가는 저를 모순과 비합리로 뭉쳐진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제가 의 역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과 악이 혼재된 한 인간의 모습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인간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보았던 사람들 중에는, 평소에 예의바르고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중요한 순간에 비겁해지고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평소에는 무례하고 불쾌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중요한 순간에 의리를 지키고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란 결코 사람을 구분하여 깃들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은 때로는 옳고 때로는 그릇되었습니다. 『베르세르크』에서는,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선과 악을 대립시키지 않고, 일정 부분 선하지만 일정 부분 악한 사람끼리 대결시킴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중세 판타지 장르에 속하는 『베르세르크』이지만, 그 인물의 감정 묘사만큼은 너무나 사실적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도 가츠와 그리피스처럼, 작은 악과 큰 선을 품은 사람이 있고, 작은 선과 큰 악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를 볼 때 그의 단순한 행동거지만으로 함부로 그를 판단할 수 없는 이유이며, 또 나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그리피스보다는 가츠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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